경도 모임이 유행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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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앱에서 시작된 ‘경도(경찰과 도둑)’ 모임이 왜 MZ세대에 사랑받는지, 게임의 규칙과 플랫폼이 어떻게 새 만남 문화를 만들었는지 설명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유년 시절의 술래잡기인 ‘경도’(경찰과 도둑)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중고 거래 앱 ‘당근마켓’ 같은 동네 플랫폼에서 모임이 조직되며, 단순한 놀이를 넘어 새로운 만남 방식으로 자리 잡는 모습입니다. 주변 이웃과 쉽게 연결되기 어려운 시대에 이 놀이가 왜 눈길을 끌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경도는 경찰과 도둑으로 역할을 나눠 도망치는 사람을 쫓는 태그형 게임입니다. 정해진 범위 안에서 경찰이 일정 수의 도둑을 잡으면 승리하는 간단한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즐기던 기억이 남아 있어, 게임의 이름만 들어도 감성이 되살아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경도 모임과 동네 앱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미지
경도 모임과 동네 앱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미지

이 추억의 놀이가 다시 뜬 곳은 물건 거래로 유명한 당근마켓의 ‘동네생활’과 ‘모임’ 게시판입니다. 2025년 말부터 해당 게시판에는 공원이나 대학 캠퍼스에서 경도 모임에 참여할 사람을 찾는 글이 수백 개씩 올라왔고, 일부 오픈채팅방에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연결돼 있습니다. 모집 공지를 올리면 몇 분 만에 마감될 만큼 반응이 빠릅니다.

실제 현장에선 세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만남이 이뤄집니다. 대구의 한 공원에서는 1월 초 수십 명의 남녀가 “혹시 경도, 당근에서 오셨어요?“라며 서로를 알아보고 모였습니다. 진행자는 감옥 역할을 하는 벤치와 이동 반경을 미리 정해 설명한 뒤, 12명의 경찰은 손전등을 켜고 20여 명의 도둑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도망가!” “잡아!“를 외치며 달리다 넘어지기도 했지만, 모두 웃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를 즐겼습니다.

서울 올림픽공원과 뚝섬한강공원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1월 중순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10대부터 30대까지 50여 명이 모여 경도를 즐겼고, 저녁 무렵에는 고등학생과 20대가 중심이 된 모임이 글로우스틱을 들고 경기를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당근마켓 모집 글을 보고 처음 왔다며 연령대가 다양해도 금세 어울릴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참여자들이 경도를 찾는 이유는 단순히 뛰어노는 재미뿐만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상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 등이 매력으로 꼽힙니다. 한 참가자는 집에서 휴대전화만 보고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뛰어노니 건강하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경도 모임의 또 다른 특징은 관계의 가벼움입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서로의 이름이나 직업을 묻지 않고, 게임이 끝나면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바로 흩어집니다. 사회학자들은 젊은 세대가 깊은 관계에서 오는 감정적 부담을 피하고 느슨한 관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이런 놀이를 통해 표출된다고 분석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공통의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이들을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경도가 빠르게 확산하는 데는 플랫폼의 역할이 큽니다. 당근마켓은 동네 인증 기능으로 근처 사람들과 쉽게 연결해 주고, 모집 글에는 시간·장소·인원 제한과 간단한 규칙이 명시돼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틱톡이나 유튜브 같은 숏폼 플랫폼에는 경도 영상과 후기가 퍼져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이러한 디지털 구조가 오프라인 놀이의 확산을 가속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공원이나 도심에서 수십 명이 뛰어다니는 모임이 잦아지면서 비참여 시민이 불편을 호소하거나 안전사고를 걱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경도 모임이 제대로 된 안전 안내나 참가자 구분 없이 열리다 보니, 참가자가 아닌 사람이 쫓기거나 신체적 접촉을 당했다는 제보도 나왔습니다. 전문가들은 놀이가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운영자와 플랫폼 차원의 안전 규칙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모임마다 특징은 조금씩 다릅니다. 많은 주최자는 20대에 한정해 모집을 하지만, 일부는 10대부터 50대까지 누구나 오라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일부 팀은 빛나는 팔찌나 종이를 붙여 경찰과 도둑을 구분하고, ‘얼음땡’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다른 추억의 게임을 섞어 진행하기도 합니다. 가벼운 운동을 겸한다는 목표로 5시간 넘게 진행하는 모임도 있습니다.

플래시몹처럼 단시간에 모여 한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화와 달리, 경도 모임은 특정 목적 없이 오롯이 놀이 자체를 즐기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금방 친해질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경쟁과 과로에 지친 청년들이 잠시 현실을 잊고자 선택하는 새로운 여가 방식인 셈입니다.

결국 경도의 재등장은 단순한 ‘술래잡기’ 부활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맞는 관계 맺기 실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네 앱이라는 기반 위에 어린 시절의 추억, 느슨한 관계 지향, 플랫폼의 편의성이 어우러져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해외 독자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현상은 한국 청년들이 어떻게 모르는 이웃과 만나고 유대를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